야구천재 이종범

1996년 5월 22일 무등야구장. 야구팬들은 다시는 볼 수 없을 법한 명장면을 보게 된다. 8회말 공격에서 김응용 감독이 포수 타석에 대타 장성호를 쓰면서 엔트리에는 가용 포수가 없었던 것. 그리고 9회 초 포수 마스크를 쓴 선수는 다름아닌 이종범, 이종범은 10회 포수로서 발빠른 주자 김재걸의 도루를 저지하는 등 5이닝을 책임지며 야구 천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이후 2010년까지 그는 야수가 할 수 있는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 냈다. 단 야구장에서 가장 홀로 가장 높은 곳 마운드를 제외하고 한 번쯤은 이종범이 마운드에서 공을 뿌려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것 또한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큰 자산이 아닐까?"

야구천재 이종범, 야구장 경기하는 모습


야구천재 해태 타이거즈로 가다


과거 해태 팬들 중 일부는 투수는 선동열, 야수는 이종범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만큼 이종범은 전성기 5툴(타격의 정교함, 파워, 주루, 수비, 송구) 플레이어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1988년, 청룡기 최우수 선수상을 기록하며 광주일고를 졸업한 이후 건국대 시절에는 줄곧 국가대표로 맹활약하면서 1992년 전국대학추계리그 최우수 선수상, 최우수 타격상(0.571), 최다 홈런상, 천마기 타격상(0.615) 등을 수상하고 아마 최우수 선수로 꼽히며 해태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

신인이었던 1993시즌 전 경기를 출전하며 종횡무진 활약했지만 양준혁의 괴력에 밀려 신인왕을 차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타율 0.310 4타점 7도루에 결정적인 수비 등 공, 수, 주에서 맹활약하여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며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선수로서 가장 완벽한 1994시즌


그리고 1994시즌, 그는 자신의 야구사에서 가장 위대한 시즌 중의 한 시즌을 보내게 된다. 시즌 초부터 자신의 잠재력을 터뜨린 이종범은 시즌 막판까지 4할의 타율을 유지하며 백인천 이후 최초로 4할을 노렸고 한국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00안타에 도전했다. 하지만 시즌 막판 배탈로 13타수 1안타에 그치며 타율 0.393 196안타를 기록하게 된다.

주목해야 할 점은 126경기로 개편된 시즌에서 0.393를 기록했다는 것과 게임당 1.58개의 안타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만약 2009년과 같이 133경기를 했다고 가정한다면 약 210개의 안타를 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2004년도에 이치로가 메이저리그 최다 안타 기록(262개)을 세웠던 페이스인 1.62개와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그는 천재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동시에 수비수 중 가장 체력소모가 크다는 유격수로 그리고 전년도 전준호가 세운 최다 도루 기록(75개)을 갈아치우며 84개로 역대 최다 도루 기록도 세울 만큼 몸을 아끼지 않았음에도 위의 성적을 올렸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톱타자로 나서서 홈런 4위(19개)와 타점 5위(77개)를 기록하며 기존의 톱타자의 편견을 깨며 투수들에게는 단순한 톱타자가 아닌 출루시키면 뛰고 실투를 하면 홈런을 때리는 공포의 존재로 다가서게 된다.

더불어 출루율 1위(0.452) 장타율 2위(0.581)에 OPS까지 1위(1.033)를 하며 당당히 MVP를 수상한다. 톱타자로 OPS 10할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아직까지 이종범(94, 97)밖에 없고 2009년도 박용택이 10할에 근접한 기록을 세웠으나 94년도에 세운 1.033의 기록은 김현수가 톱타자로 나서면 모를까 당분간 깨지기 힘들 것이다.

모든 것을 이룬 사나이 이종범


한국시리즈 MVP(1993, 1997)와 정규시즌 MVP(1994)를 이룬 이종범은 일본에서 리턴 후 2003 올스타전에서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 2도루를 기록하면서 MVP에 오르며 MVP 트리플크라운을 기록하게 된다. 여기에 한국시리즈 반지 4개(1993, 1996, 1997, 2009)로 프로야구 선수가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는 모두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2006시즌 WBC에서의 맹활약 후에 그의 성적은 곤두박질쳤고 급기야 2007시즌에는 은퇴설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팬들은 스포츠 신문에 이종범을 지지하는 광고를 냈고 이에 힘입어 이종범은 선수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와신상담 후 맞은 2009시즌, 수많은 팬들의 사랑으로 하여금 다시 실력을 정비하여 결국 팀의 맏형으로서 소속팀이 1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우승하는데 교두보가 되었다.

가끔은 일본 진출을 안 했더라면, 또는 통한의 데드볼만 맞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하게끔 하나 확실한 것은 그가 진정 경기를 지배하는 야구천재 이종범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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