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영의 위상에 강력히 도전하는 투수 월터 존슨

싸이 영의 위상에 강력히 도전하는 투수 월터 존슨


 

미국 야구에서 전설적인 타자가 베이브 루스라면 투수 중에는 단연 싸이 영이 가장 뛰어난 투수로 알려져 있다. 매년 최고 의 투수에게 주는 상의 이름이 '싸이영상'일 정도다. 그러나 싸이 영의 위상에 강력히 도전하는 투수가 있으니 바로 월터 존슨이다.

월터 존슨은 1907년 워싱턴 세네터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해 1927년까지 21년간 한 번도 팀을 바꾸지 않고 활약했던 우완 강속구 투수였다.

1887년 캔자스의 시골 마을에서 스웨덴 이민자 부부의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월터는 1901년 캘리포니아 주 LA 인근의 오렌지카운티로 이주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이다호 주의 전화 회사에서 일하면서 세미 프로팀 와이저에서 뛰던 그는 한 스카우트의 눈에 띄어 워싱턴 내셔널스(워싱턴 세네터스의 전신으호현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을 맺었다.

'릭 트레인(Big Train)'이라는 별명으로 사랑받던 월터 존슨의 경력은 정말 화려하다. 통산 417승으로 역대 2위에, 110번의 좋은 역대 1위다. 3509개의 삼진으로 9위에 올랐으며 1913년과 1924년에는 투수로 MVP를 차지했다. 1968년까지 깨지지 않던 56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의 보유자였으며, 1936년 명예의 전당이 문을 열던 당시 최초의 멤버가 된 5인 중의 한 명이다. 득표율은 83.65%였다.

1907년 루키 투수 월터 존슨을 처음 대면했을 당시 타이 콥의 증언이 흥미롭다.
"8월 2일 나는 야구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목격했다. 우리는 더블헤더의 첫 경기를 준비하다가 그 시골뜨기 같은 루키 투수가 몸을 푸는 것을 봤다. 키가 크고 느릿느릿한 그 친구는 팔이 하도 길어서 유니폼 팔목 아래까지 길게 늘어졌고, 처음에는 사이드암 동작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한 타이거스 선수는 송아지 우는 소리를 내며 그 친구를 놀렸고, 워싱턴의 캔틸론 감독에게 그 촌뜨기를 농장으로 돌려보낼 준비를 하라고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첫 타석에서 그와 마주한 순간 그 친구는 예의 부드러운 투구 동작을 시작했다. 그리곤 뭔가가 순식간에 내 앞으로 스쳐 지나갔고 나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 놈은 위협적인 '쉭~' 소리만 내고 지나가버렸다. 우리는 아무도 공을 건드릴 수 없었다. 야구를 하면서 가장 강력한 팔에서 뿜어 나오는 강속구와 마주쳤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금방 알아챘다."

양키스 외야수 버리 크리는 "월터 존슨의 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출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그의 팔이 앞으로 나오는 것을 보는 순간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뿐이라고도 했다.

당시에는 구속을 잴 수 있는 기구들이 없었지만 타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월터 존슨은 시속 100마일(160km)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정도 구속이라면 현대 야구에서도 보기 드문 강속구지만 당시로서는 상상을 못할 구위였다. 특히 존슨은 파워 피처의 전형인 오버 스로우가 아니라 사이드암으로 그렇게 빠른 공을 던졌다.

3509탈삼진 기록은 월터 존슨이 은퇴하고 55년 후인 1983년에 놀란 라이언에 의해 깨졌지만 2차 대전 이전에 활약했던 투수 중 존슨의 삼진 기록에 1000개미만으로 육박했던 투수는 단 두 명뿐이었을 정도로 당시는 독보적인 삼진왕이었다. (싸이 영이 2803개로 2위지만 800개 이상의 차이가 났고, 팀 키프가 2562개를 기록했다.)

21년 선수생활 동안 월터 존슨은 10년 연속을 포함해 12번이나 20승 이상을 기록했다. 1912년에는 33승, 1913년에는 36승을 각각 기록했다. 특히 그는 1-0으로 끝난 경기에서 38승26패를 기록해 승수와 패수가 모두 여전히 MLB 기록으로 남아있다. 1908년 9월 4, 5, 7일에는 뉴욕 양키스를 3연속 완봉승으로 꺾은 적도 있다. 투수의 최고 영광 중 하나인 트리플 크라운(한 시즌 다승, 평균자책점, 삼진 모두 1위)을 3번이나 차지했으며, 1924년에는 만년 동네북이던 워싱턴을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

월터 존슨은 투수치고는 아주 뛰어난 타자이기도 했다. 1925년 4할 3푼3리를 쳤으며 통산 타율도 2할3푼5리였다. 1917년에는 130타수 만에 2루타 12개와 3루타 한 개를 쳤고, 28승을 거둔 1914년에는 홈런 3개를 때리기도 했는데 그 시즌에 타이 콥, 호너스 와그너, 나폴레온 라즈와 등 세 명의 명예의 전당 멤버들이 모두 월터 존슨보다 홈런이 적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친절한 성격의 월터 존슨은 친구들이 아주 많았으며, 아주 친한 친구에게는 경기결과와 무관할 경우 치기 쉬운 공을 던졌다는 증언도 있다.

<스포팅뉴스>가 선정한 100대 선수에서 투수 중 최고인 랭킹 4위에 오르기도 한 월터 존슨은 은퇴 후 워싱턴과 클리블랜드의 감독을 지냈으며 59번째 생일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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